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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 구스타프 클림트 ) 내가 사랑하고 모두가 사랑하는 그림

by ♠ 잡학박사 2020. 4. 6.

키스 -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 구스타프 클림트 (1907-1908)

캔버스에 유채와 금, 180x180cm,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1900년, 빈의 분리파그룹 내에는 글래스고 4인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의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를 비롯한 3명의 예술가에 의해 결성된 글래스고 4인조는, 유럽미술 및 공예운동의 행보에 크게 기여한 미술가 그룹이었다. 

 

비록 구스타프 클림트가 1905년 분리파그룹을 떠났다 할지라도, 그는 매킨토시의 아내 마가렛 맥도날드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준 보석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맥도날드의 선적양식은 클림트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클림트가 그린 많은 주제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02년 완성된 '베토벤 프리즈'의 마지막 패널일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 이 작품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중 한 대목인 '전 세계에 보내는 키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클림트는 실러가 사용한 넓은 의미의 정치적 수사를 좀 더 개인적 의미의 것으로 대체해놓았다. 그는 또 그 의미를 여성의 자궁 같은 공간에서의 포옹으로 뒤바꿔버렸는데, 이는 '키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자의 드레스에 두드러지는 원형의 생물 형태와 남자의 옷에 보이는 힘찬 직사각형 장식은 강한 대조를 이룬다. 이 모든 장식은 클림트 개인의 상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이미지는 너무 유혹적이라서 우리는 클림트의 다른 요소들, 이를테면 원시 표현주의 같은 요소들을 놓치기 쉽다.

 

'키스'에서 흉측하게 굽은 여자의 발가락과 일그러진 손, 부패 중임을 암시하는 듯한 오싹한 색의 피부 등은 클림트의 원시 표현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요소들이다. 

 

관람하는 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장식적이고 관능적인 과도함 역시 클림트 예술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표현주의 양식은 당대인의 반감을 사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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